Board

PERIGEE GALLERY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0
[한국경제] 영상설치미술로 풀어낸 갈등과 대립의 '탈출구'
2015-12-30
김기라 씨 페리지갤러리 개관 기념전
김기라 씨의 비디오영상 ‘지각의 정치학’.김기라 씨의 비디오영상 ‘지각의 정치학’.


대형 화면에 활짝 핀 진달래가 잠시 비친 뒤 이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한다. 영상 이미지 대신 오랜 세월의 강을 건너 극적으로 만난 남북 이산가족의 애절한 대화만이 34분 동안 관객의 귓전을 울린다. 거기서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념의 이분법은 설 곳을 잃어버린다. 김기라 작가의 영상물 ‘이념의 무게_마지막 잎새’다.
이념, 계층, 지역, 환경 등 사회 문제를 회화, 설치, 영상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해온 김씨가 7월5일까지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개인전 ‘마지막 잎새’를 연다. 지난 5월30일 개관한 페리지갤러리는 경남 구미에 본사를 둔 정보기술(IT) 부품업체 KH바텍이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개관기념전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과연 공동선(善)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만 하나’라는 두 가지 화두를 영상 설치 회화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7개의 비디오 영상으로 이뤄진 ‘이념의 무게’ 연작에서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논란, 쌍용자동차의 노사 문제, 천안함 사건 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대립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권력자와 피권력자, 기득계층과 소외계층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미명 아래 서로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인식한다. 이런 극단적 행동은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공동선의 이름 아래 개인성을 억압할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체 없는 이념의 틀 속에서 벌어지는 현대사회의 혼란스러운 현장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어주지만 둘 다 죽음을 맞이하는 남녀, 눈을 가린 채 헤매다 충돌하기를 반복하는 남녀, 끈으로 이어진 두 남자가 자신의 의지대로만 움직이려다 폭력으로 비화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고 있다.
“냉면을 먹다가 북쪽의 당신 생각이 났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로 끝을 맺는 ‘북쪽으로 보내는 서한들_수취인 불명_황해’에서는 진정한 남북통일은 상대편의 기본적인 삶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070)4676-7034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