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
이형구 개인전 'Gallus'…페리지갤러리 11월 7일까지
'Gallus' 작품 앞에선 이형구 작가 |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전시장을 가득 채운 단 하나의 작품. '닭'이다. 정확히는 '닭뼈'다. 이걸 보고 닭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진 않는다. 공룡과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닭이 맞다. 시골 장닭을 모델로 16배 확대한 골격 모습을 알루미늄과 한지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제목은 닭의 학명인 'Gallus'다.
이번 전시는 이형구 작가(46)의 작업이다. 도널드덕과 같은 캐릭터를 실재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뼈'를 입힌 시리즈 '아니마투스'로 유명한 작가다. 닭뼈 작업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우연히 지인과 치킨을 먹다가 한마리가 맞는지 궁금했다. 다 먹고 나서 뼈를 모두 그대로 달라고 해 집으로 가져왔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닭이지만 사실 살코기에만 관심이 있지 뼈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뼈를 유심히 살펴보니 온갖 우아한 선들이 놀라웠다"고 했다.
그는 이번 작업을 위해 닭뼈를 분석하고, 총 146개의 뼛조각을 알르미늄 뼈대에 한지를 입혀 만들어냈다. 전시장으로 운반하기 위해 5톤, 1톤 트럭을 한대씩 대동해 뼛조각을 가득 채워 날랐다. 그리고 다시 해체된 뼛조각을 조립하는 기간만 장장 나흘이 걸렸다. 작품의 가로 길이 2.6m, 높이는 전시장보다 높아 닭을 바로 세우진 못했다. 제대로 등뼈를 세운 자세로 치수를 재면 8m는 족히 넘는다. 작가는 "이전부터 계속 '뼈'와 관련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번 작품이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지난 11일 이 전시 오프닝에선 '치맥 파티'가 열렸다. 작가는 "보통 전시 개막식은 격식을 갖추고 우아하게 하는데, 어차피 주제도 '닭'인데다 관람객들이 일마치고 와서 보는 전시고 해서 파티를 준비한 것"이라며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작은 뼈가 바로 이런 거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Gallus' 전시 전경 |
작품 부분 모습 |
작품 부분 모습 |
실험실과 같은 이형구 작가의 작업실 |
그는 20대 시절 초기 작업부터 줄곧 이 같은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물을 이용해 시각적 굴절을 일으켜 팔과 손가락이 커져 보이게 만드는 장치에서 시작된 'THE OBJECTUALS(오브젝츄얼스)'는 광학렌즈로 신체 일부분인 눈이나 입을 확대해 낯선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이 된 'ANIMATUS(아니마투스)' 시리즈는 '생명이 있는'이라는 라틴어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했다.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평면적인 존재를 입체로 구성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골격이라는 내부에서 외형을 역추적해 만들어 낸다. 작가는 "'죽어버린 동물 화석처럼 뼈만으로도 그 캐릭터를 연상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 바로 '아니마투스'다. 캐릭터들은 실존했던 것처럼 새롭게 다가온다"며 "이번 '닭뼈' 작업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다. 살아 있는 닭을 뼈만 그대로 확대한 것뿐이다. 재밌는 것은 그 작은 닭이 커지고, 뼛조각 마다 학명을 적어 놓으니, 사람들이 닭인지 더 못 알아보더라는 거다. 많이들 '공룡 아니냐'고 묻는다"고 했다. 그의 작업은 이렇게 고정된 인식의 틀을 벗어나 있다. 이야기 방식, 작업과정 역시 흥미진진하다. 우리의 제한된 신체적 구조와 감각으로는 인지하기 힘든 것들을 작업으로 풀어 새로운 시각을 재구성해, 우리의 감각 또한 재설정하게 한다.작가는 현재 러시아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박물관, '모스크바 폴리테크닉 뮤지엄'에서다. 이곳에선 그동안 그가 작업했던 '아니마투스' 시리즈가 총망라돼 가장 큰 규모로 전시되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스위스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를 연 바 있다.
이번 닭뼈, 'Gallus' 전시는 서울 서초동 반포대로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오는 11월 7일까지. 070-4676-7034.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