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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 [주목 작가 – 후니다 킴] 소리를 조각하고, 관객은 밀고 녹여내고
2018-07-18

후니다 킴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신발을 벗고 들어선 전시장. 천장 곳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오브제의 모양이 마치 연탄 같다. 이 오브제의 정체는 소리를 들려주는 스피커다. 그런데 스피커가 그냥 혼자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스피커를 미는 사람의 손길에 의해 여기저기 흔들릴 때 비로소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스피커가 흔들리면서 가까이 다가올 때 마치 머리 뒤에서부터 소리가 들리는 듯 울려 퍼지고, 멀어질 땐 아득하게 소리가 희미해진다. 소리가 살아있는 생명처럼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느낌.


후니다 킴 작가의 작업이 설치된 페리지갤러리 전시장 전경.(사진=김금영 기자)

페리지갤러리가 후니다 킴 작가의 개인전 ‘익숙함이·쌓이고·녹아내리는 – 일상에 대한 낯선 번역’을 8월 11일까지 연다. 작업의 시작은 소리 채집부터 시작된다. 전시명에서 살피자면 ‘익숙함이 쌓이는’ 과정에 해당된다. 귀에 익숙하게 들리는 소리들은 사람들의 목소리,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등 작가가 일상의 소리들을 녹음한 것이다. 녹음을 위해 의도적으로 특별히 어느 장소를 가거나 기간을 정해놓진 않는다. 특별할 것도 아닌 그저 일상의 소리를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 자체가 바로 작가의 일상.

작가가 녹음한 소리들은 스피커를 통해 전시장에 울려 퍼진다. 그런데 본연의 소리를 그냥 들려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소리의 형태가 변하는, 즉 ‘녹아내리는’ 과정이 전개된다. 기계에 의해 녹음된 소리가 수(數)로 형질 변환되는 디지털 코드화를 거친 뒤 다시 내보내지는 것.


물리적인 요소들을 디지털 코드화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소리 환경 장치 '아파라투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의 스피커는 그냥 소리를 재현하기 위한 기술적 재생 도구가 아닌, 환경적 소재이자 작가가 직접 제작한 소리 환경 장치 ‘아파라투스’다. 이 장치는 나무, 돌, 금속 등 전통적인 매체가 가진 소재성의 한계를 벗어나고, 동시에 물리적인 요소들을 디지털 코드화해 사유의 유연함을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우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리 또한 디지털 환경에서 수로 변환되며 미세한 디테일의 재조합이 이뤄진다”며 “그래서 아파라투스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익숙한 소리임과 동시에 본연의 소리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 과정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파라투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반사판에 반사되고, 벽의 흡음판에 흡수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치 아파라투스뿐 아니라 공간 자체에서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 온몸으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이런 연유였다.

소리를 ‘소조’하면서 공간을 ‘작곡’하다

후니다 킴, '사운드스케이프 아파라투스'. 전자기판, 3D 프린트, 혼합매체, 150 x 150 x 130mm. 2018.(사진=페리지갤러리)

이런 자신의 작업을 작가는 ‘공간 작곡’이라 말했다. 그는 “소리는 물리적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 점이 흥미로웠다”며 “우리가 살기 위해 땅이 필요하듯이 소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소리를 담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흡수되고 반사되는 소리가 공간 이곳저곳을 오가는 과정은 마치 악보를 짜는 것과도 같았다. 공간 작곡은 공간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본래 조각을 전공했다. 디자인 작업 또한 했던 작가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운드 아트와 테크놀로지를 공부했다. 그런데 이때 조각과 디자인 작업을 한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작가는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은 ‘소리를 소조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수로 변환된 소리를 덧붙이고 때로는 덜어내는 과정이 마치 조각을 소조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후니다 킴, '사운드스케이프 아파라투스'. 전자기판, 3D 프린트, 혼합매체, 150 x 150 x 130mm. 2018.(사진=페리지갤러리)

작가의 작업을 이루는 주요 요소인 공간과 소리,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어우러져야 진정한 공간 작곡이 시작된다. 소리는 귀로 듣되 이 소리가 만들어지려면 아파라투스를 미는 사람의 행동이 꼭 있어야 한다. 흔들리는 아파라투스는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인지되고, 아파라투스를 밀고 당길 때의 촉각은 소리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온몸의 감각으로 익숙한 소리를 새롭게 듣게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설명이 와 닿는 지점이다.

아파라투스가 담고 있는 저마다의 소리들, 그리고 아파라투스가 흔들릴 때 마치 음악을 작곡하듯 섞이는 소리들을 통해 익숙한 요소들이 쌓이고, 녹아내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평범했던 일상에 대한 낯선 번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전시장에서 경험할 수 있다.


후니다 킴, '아파라투스_디지털 랜드'. 2017.(사진=정희승)

페리지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는 무엇을 재현하거나,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감각적 경험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생산하는 소리와 장치, 대상과 접촉하는 인터랙티브적 요소,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공감각적 환경 그 자체를 구현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시의 요소인 물질성, 기표, 기의 모두는 상황에 따라서 분리되고 합쳐져 관객이라는 지각하는 주체가 가진 각자의 조건에 따라 가변적인 의미들을 만들어 낸다”며 ”우리가 보편적으로 감각을 지각하는 방식의 전환을 유도하는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장을 거니는 사람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소리 환경 장치 '아파라투스'는 관람객의 밀고 당기는 손길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사진=김금영 기자)

김금영 기자
기사 원문: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24...
(2018.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