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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GEE GALLERY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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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댓아트] '드러나지 않는 면'을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글'을 쓰다
2019-12-13
■ 페리지팀프로젝트 2019 <미치지 않는> |2019.12.13~2020. 2.8|페리지갤러리



천미림 기획자와 오민예 작가가 주고받은 서신 봉투|페리지갤러리

휴대폰으로 언제든 즉문즉답이 가능해졌지만, 요즘도 사람들은 가끔씩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쓰기도 한다. 대개가 어쩌다 아날로그적 감성에 젖었거나, 상대방에게 특별한 정성을 보이고 싶을 때다. 그러나 한껏 기분을 내 손으로 편지를 써봤자,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이내 깨닫게 된다. 생각의 속도에 맞춰 키보드를 두드리며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날쌘 손가락과 달리, 펜을 쥔 손은 생각의 속도를 좀처럼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진 채, 어색한 문장들만 남겨 놓기 때문이다. 몇 장의 종이를 찢어버리다보면 처음에 가졌던 낭만적인 마음마저 이내 사라져버린다. 게다가 그 편지를 우편으로 보낸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회의감이 들이닥친다. 숫자 1이 없어지는 순간 '읽씹'을 당했다고 찜찜해하며 매순간 커뮤니케이션에 결핍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상대에게 편지가 도착했을 때를 짐작하며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특별한 이벤트일 때만 견딜만 한 일일 것이다.


천미림, Self-portrait, 종이에 연필, 30.5×45.5cm, 2019|페리지갤러리

그런데 만약 1년 내내 누군가와 일주일에 한 번씩 손으로 쓴 편지를 우편으로 주고받는다면 어떨까. 메신저가 소통의 방식을 결정한다면, 소통의 방식은 생각의 방식을 결정한다. 답답하고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그 방식에 적응하다보면 결국 마지막에 변하는 건 생각의 방식이다.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리고, 쉼없이 톡을 주고받을 때는 떠오르지 않던 생각과 가려졌던 마음들이 손으로 편지를 쓰다보면 어느 순간 드러나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종이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처럼 한참 들여다본 자신의 마음과 오래동안 가다듬은 생각들 같은 것 말이다. 빠른 소통 속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를 편지를 주고받으며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페리지팀프로젝트2019 '미치지않는'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페리지팀프로젝트 2019'가 진행한 지난 1년간의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특별하다. 오는 2월 8일까지 진행하는 전시 <미치지 않는>은 이 프로젝트가 내놓은 최종 결과물이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의 1년이라는 과정에 주목한다. '페리지팀프로젝트'는 올해로 3회째 이어지고 있는데, 기획자와 작가를 선정해 하나의 팀을 만들어 두 명이 1년 동안 협업의 과정을 거쳐 전시를 만들어낸다는 컨셉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천미림 기획자, 손현선 작가가 선발됐고, 거기에 오민예 제책자가 합류해 전시과정을 기록하는 '제책' 과정을 더했다. 서로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었던 천미리 기획자와 손현선 작가는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의 아이디어를 가시화환 우편을 교환했다. 이를 통해 서로의 관심과 작업과정, 아이디어를 나누었고, 이 둘이 주고받는 편지는 전시 아카이브를 담당하는 오민예 작가에게도 당도했다. 천미림 기획자는 "셋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메신저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를 쓸 때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를 훨씬 많이 고민했다. 편지를 통해 범람하는 생각들을 가다듬고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현선, 엷게 구겨진 면,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70.7cm, 2019|올댓아트 박송이


손현선, 마주한 면, 캔버스에 아크릴릭, 170×136cm, 2019|올댓아트 박송이


손현선, 얼어서 굳어진 면, 캔버스에 아크릴릭, 흑연, 석고, 100×100cm, 2019 |올댓아트 박송이

서로 다른 세계와 예술관을 갖고 있었을 그들이 '편지 교환'이라는 소통 방식을 통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천미림 기획자의 글과 손현선 작가의 회화, 오민예 제책자의 책이 전시된 이번 전시는 그들이 도달한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기획자의 글이 작가의 회화에 스며들고 그들이 나눈 대화가 '책'이라는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등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어 하나의 전시가 완성됐다. 그러나 그들은 예술을 매개로 각자의 거리를 유지하며, 완벽한 '합일'을 꿈꾸지 않는다. 전시명이 '미치지 않는'인 이유에 대해 손현선 작가는 "서로를 향해 닿으려고 하지만 '미치지 않는' 부분이 생기더라, '미치지 않는'의 앞에 붙이고 싶었던 말들이 있었지만, 그런 말들을 생략하고 이 관계를 단정짓지 않으려고 했다. 작업한 과정 자체를 드러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손현선 작가는 '드러나지 않는 면'을 회화로 남겼고, 기획자 천미림은 '말해지지 않는 글'을 썼다.


오민예, 새까만 밤에, 종이와 옻지, 11.8×17.5×2cm, 2019 |올댓아트 박송이


비추는, 필름, 종이, 16×23.8×0.7cm, 2019 |올댓아트 박송이

그들의 1년을 곁에서 관찰하고 기록한 오민예 작가의 책 또한 특별하다. 검은 종이 위에 편지를 먹지로 필사해 보이지 않도록 감추어진 책, 버려지거나 새로 묶이기 위해 해체된 책의 앞뒤 빈 페이지만으로 이루어진 진행형의 책, 투명한 필름 위에 투명한 입체적 이미지와 글을 덧씌운 책 등은 이들이 함께 보내온 시간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시명 : 페리지팀프로젝트2019 <미치지않는>
기획 : 손현선, 천미림
참여 : 손현선, 오민예, 천미림
전시기간 : 2019년 12월 13일(금) ~ 2020년 2월 8일(토)
전시장소 : 페리지갤러리,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18 KH바텍 서울사옥 B1
관람시간 : 월-토 10:30 – 18:00 / 일요일, 12/31, 공휴일 휴관

올댓아트 박송이, 2019. 12. 13.
(기사 원문 : http://bitly.kr/L9wGX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