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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GEE GALLERY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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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댓아트] 도대체 인간에게 이 개들의 자리는 무엇일까?
2019-11-08
■ 최대진 ‘개의 자리’ |2019.09.06. (금) ~ 2019.11.09. (토) |페리지 갤러리

‘개의 자리’ 설치 전경
‘개의 자리’ 설치 전경

최대진 작가는 동시대 작가로서 마주치는 사회의 부조리와 삶의 혼란을 드로잉과 설치 작업을 통해 선보이는 작가이다. 어떤 작가들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적용하며, 이것을 작업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의 제목 ‘개의 자리’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나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모눈종이 위에 목탄으로 그린 개와 새가 있다. 이 드로잉의 제목은 <벨카, 라이카, 스트렐카 그리고 이름 모를 세 마리 철새>이다. 라이카는 역사상 최초의 ‘우주견’이다. 우주견은 인간이 우주로 탐험하기 전, 귀환 여부를 실험하기 위해 우주선에 탑승한 채 송출되었던 개를 뜻한다. 1957년 소련은 보스토크 계획의 일환으로 우주견을 우주선에 탑승시키는데, 라이카는 유독 사람을 잘 따르고 온순하다는 이유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우주선 발사 후 7시간 만에 고열로 쇼크사하는 비극이 발생하였지만, 1960년 벨카와 스트렐카 역시 스푸트니크 5호에 탑승하게 되었다. (벨카와 스트렐카는 다행히 궤도를 17바퀴 돈 이후 지구로 귀환했다고 한다.)

최대진 Daejin Choi, 벨카, 라이카, 스트렐카 그리고 이름없는 새마리 철새들 / Belka, Laika, Strelka and nameless 3 migrotary birds, 2019, 모눈 종이에 목탄 / Charcoal on graph paper, 74 x 105cm
최대진 Daejin Choi, 벨카, 라이카, 스트렐카 그리고 이름없는 새마리 철새들 / Belka, Laika, Strelka and nameless 3 migrotary birds, 2019, 모눈 종이에 목탄 / Charcoal on graph paper, 74 x 105cm

최대진 작가는 벨카와 스트렐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난 뒤, ‘도대체 인간에게 이 개들의 자리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우주견이 인류 과학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성취와 발전이라는 영역에 그림자로 남아 있는 개의 자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벨카와 스트렐카라는 실체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가만의 방식은 섬세한 드로잉으로 형상화 되었으며, 이 과정은 사뭇 거룩하다.

최대진 Daejin Choi, 쓰나미 / Tsunami, 2019, 나무에 먹과 페인트/ Ink & paint on wood, 가변크기
최대진 Daejin Choi, 쓰나미 / Tsunami, 2019, 나무에 먹과 페인트/ Ink & paint on wood, 가변크기

<개의 자리>에는 최대진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야기들은 전시장 벽에, 바닥에, 다른 문과 방에 존재한다. 그것은 프로파간다와 같은 외침이 되고, 실제로 서라운드 사운드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것들은 어쨌거나 우리에게 처연하리만큼 처절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전시장에 설치된 여행가방 안에 설치된 전구의 깜박임을 바라보자. 불빛의 깜박임은 어떤 규칙을 따르고 있다. 이 작업의 제목은 <일리야드>. 전구의 깜박임은 모스 부호로 일리야드의 첫 구절-‘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를 신호화하고 있다.

최대진 Daejin Choi, 날 집에 데려 가지마, 울산바위 / Don‘t take me home, Giant rock of Ulsan, 2019, 종이에 먹 / Chinese ink on paper, 57 x 42cm
최대진 Daejin Choi, 날 집에 데려 가지마, 울산바위 / Don‘t take me home, Giant rock of Ulsan, 2019, 종이에 먹 / Chinese ink on paper, 57 x 42cm

종이에 목탄, 혹은 나무 목재 위에 목탄으로 드로잉한 작가의 필체는 강렬하며,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설전>은 축구선수들이 눈밭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장면을 롱숏으로 담은 드로잉이며, 작품을 보고 있자면 뭔가 처연한 감정이 용솟음친다. 전시장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쓰나미>는 제목과 스케일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매체와 메시지가 합일하는 작가의 좋은 자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드로잉 시리즈의 제목은 마치 정치문구와도 견주어 볼 만하다. <날 집에 데려가지 마, 소말리아 해, 인도양> , <날 집에 데려가지 마, 후쿠시마 발전소>, <날 집에 데려가지 마, 울산바위>, <날 집에 데려가지 마, 부산역>...... 이 작품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의 집은 왜 파괴되었을까? 언제부터 집이 돌아가기 싫은 장소로 바뀌었을까? 최대진 작가의 작업은 크게는 세계의 재앙과 파국,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결국 ‘폭력’에 대한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낀다.

최대진 Daejin Choi, 밤벌레들 / Night Bugs, 2019, 혼합 매체, 스피커, 사운드 (사운드 피처링 : 윤재민) / mixed media, speaker, sound (sound featuring : Jaemin Yoon), 가변크기
최대진 Daejin Choi, 밤벌레들 / Night Bugs, 2019, 혼합 매체, 스피커, 사운드 (사운드 피처링 : 윤재민) / mixed media, speaker, sound (sound featuring : Jaemin Yoon), 가변크기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작업은 별실에 위치한 <밤벌레>이다. 흰 점토로 빗어진 미니어처 모형은 ‘기독 정신병원’의 재현이다. 이 작업은 어두운 별실에서 외롭게 번들거린다. 그리고 가을 밤 아름답게 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 방을 지키고 있다. 관객을 금세 초현실적인 세계로 안내하는 이 작업 역시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현한 작업이다. 페리지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최대진 작가의 전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며, 아름답고 기이한 작가의 세계와 그것을 형성한 우리의 세계를 반영하는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글 |조숙현(전시기획자)
사진 |페리지 갤러리

조숙현은 현대미술 전문 서적·아트북 출판사인 아트북프레스(Art Book Press)를 설립했다.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고 영화주간지 Film 2.0과 미술월간지 퍼블릭
아트에서 취재기자를 했다.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
<서울 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 등이 있으며,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조숙현 큐레이터, 2019. 11. 5.
(기사 원문 : http://bit.ly/2qAWF1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