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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켈란젤로, 로댕의 그늘 이젠 지긋지긋해
2023-08-02
조각가 이병호 신작전 ‘피스’


페리지갤러리 전시장에 설치된 이병호 작가의 연작 조형물들. 으깨어지거나 분리된 사람의 몸덩이와 사물들의 형태를 접붙이고 떼어내기를 거듭하는 결과물들이다. 작가는 이 근작들에 대해 모두 ‘익센트릭 아바티스(Eccentric Abattis)’라는 단일한 작품 제목들을 붙였다. 노형석 기자



왜 거장 미켈란젤로와 로댕의 그늘을 여태껏 벗어나지 못하는가. 조각가들이여,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어떻게든 탈주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번 만들고 나면 굳어버리는 기존 조각의 너울을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 마련된 소장조각가 이병호씨의 신작 전 ‘피스’(PIECE·조각) 전시장은 이런 의문과 부르짖음이 맴돌고 있다. 찢겨지고 뭉개지고 갈라진 사람의 몸과 물체 덩어리들이 서로 접 붙고 분리되어 드러난 모양들의 난장 그 자체로서 고루한 조각의 속성에 대한 반기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미켈란젤로와 로댕을 빗댄 작가의 의문은 기실 조각의 역사적 본질에 대한 비판이다. 고대 이집트의 기념비적인 부조상과 그리스 로마의 사실적인 위인상, 동아시아의 불교 조상을 거쳐 서구의 고전주의와 인상주의, 현대 추상조각에 이르기까지 조각은 항상 공간을 차지하는 존재감을 가져야 하는 고정된 실체였다. 물론 움직이는 조각(무빙 스컬프처)이 시도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20세기를 풍미한 알렉산더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 모빌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칼더의 모빌 또한 외부동력인 바람이 불어서 작동하더라도 바람이 멈추면 작가가 처음 만든 모양새나 틀 같은 조형적 규칙 안에 포박되어 버리는 숙명을 피할 수 없다.



페리지갤러리 전시장 들머리에서 선보이고 있는 부정형의 조형물들. 모두 ‘익센트릭 아바티스(Eccentric Abattis)’라는 단일한 작품 제목이 붙어있다.



결국 무언가 만들고 나면 그대로 굳어진 채로 끝이라는 게 조각의 본질로 굳어져 왔고, 그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비치는 것이 작가는 내심 못마땅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조각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을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부터 숙명적인 화두처럼 삼고 작업했다. 그 주된 소재로 삼은 것이 바로 노화하면서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신체였다.

작업 초창기 풍선 같은 소재에 바람을 넣어 부풀면 온전한 몸이나 얼굴이 됐다가 빠지면 뼈만 남거나 해골로 변화하는 작업 등을 통해 시간성을 탐구했던 작가는 점차 석고나 수지로 뜬 인간의 몸과 사물의 여러 부분을 분리시켜 접붙이고 다시 떼어내 다른 미지의 형상으로 방식으로 시간에 따른 조각의 변모상을 실험해왔다. 신승오 기획자와 함께 준비한 이번 전시에서는 플래스터 수지로 된 인간 몸의 여러 부분들을 컴퓨터 스캐닝으로 이미지 데이터화한 뒤 입체 3D프린터 6대를 가동해 수백개의 단편들을 뽑아낸 뒤 임의로 붙이고 떼어내는 흔적들을 공간에 휘휘 부려놓은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이 작업들을 두고 ‘익센트릭 아바티(Eccentric Abattis)’란 영어+불어 조어를 붙였다. ‘기이하고 쓸모없는 부분’으로 해석되는 이 말에서 ‘아바티’는 조각 거장 로댕이 인간 육체의 상반신만을 다룬 토르소 작업을 한 뒤 남은 덩이들을 일컬었던 말이기도 하다.



페리지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는 부정형의 조형물들 가운데 일부. 모두 ‘익센트릭 아바티스(Eccentric Abattis)’라는 단일한 작품 제목이 붙어있다.



작가는 형태에 대한 기본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굳으면 죽는다는 명제 아래 끊임없이 탈바꿈하는 조각의 탈주를 꿈꾼다. 특정한 의미에 고정되지 않은 미지의 조형세계에 다다르려는 처절하기까지 한 의지가 어느 경지까지 치달을지 궁금증을 낳게 한다. 7월 29일까지.

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