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School

페리지아트스쿨은 ㈜KH바텍이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위하여 무료로 운영하는 미술을 사랑하는 대중을 위한 현대미술교육프로그램입니다.

임근준의 “모던, 포스트모던, 포스트컨템퍼러리: 오늘의 미술은 어디로 가는가?”는, 변화하는 현대미술의 존재 형식과 양태를 추적하며, 대중이(실은 미술 전공자도) 현대미술에 관해 품는 모종의 의구심을 하나하나 풀어보는 총8회의 연강 프로그램입니다. 포스트컨템퍼러리의 상황을 전제로, 현대미술을 규정해온 시대성의 구조 변동과 의제 변환의 역학을 되돌아보는 가운데, 다양한 미해결 주제와 유의미한 방법론을 갈무리하고 또 하나하나 답을 찾아봅니다.

장소 : 페리지갤러리 B2 페리지 홀
기간 : 7.3. TUE-8.21. TUE
시간: 오후 3-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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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TUE
모던, 포스트모던, 포스트컨템퍼러리의 미술: 시대성의 구조 변동과 의제 변환의 역학
모더니즘의 미술은, 일안 원근법 회화의 인식론적 대전제였던 순수 평면에 저항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재현 미술의 환영성을 부정하고 내용과 형식으로 등치시키는 추상미술의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각 단계별 변화는 업데이트되는 발전론적 세계관에 의해 매번 당위성을 인정받았다. 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어떻게 성립됐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발전론적 세계관을 부정함으로써, 현대예술을 규정해왔던 모더니티의 가치 체제에서 미래로의 추동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더랬다. 즉 동시대성/당대성/컨템퍼러나이어티는, 미래로의 동세를 상실한 모더니티의 다른 이름이었다. 한데, 2008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됐고, 기존의 컨템퍼러리 아트는 퇴행을 거듭하며 오작동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 그렇다면, 오늘과 근미래의 새로운 미술을 추동하는 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인식론적 대전제의 변화를 야기하는, 시각적/기술적 미디어의 발전과 연동하는,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구조 변동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 시대의 시각 예술을 규정하는 대의제는 무엇일까?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7.10. TUE
현대예술의 재료 혼용과 미디어의 재창안: 포스트미디엄의 상황에 부합하는 미술의 형식에 대한 논란
비미술적 재료의 사용과 미적 미디어의 재창안은 1910년대 이후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었다. 그렇다면, 시각 미디어를 재매개하는 컴퓨팅 환경, 즉 멀티미디어 체제의 등장 이후, 구식 미디엄을 사용하는 미술은 어떻게 새로운 미술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회화와 조각 등은, 선고된 죽음을 통해 거꾸로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 오늘의 현대미술이 과거의 실험성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미디엄/미디어의 차원에서 어떤 형태/형식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7.17. TUE
장소 특정적 미술 이후: 전시되는 장소나 상황에 비평적으로 대응하는 현대미술은 어떤 과제를 남겼는가?
미니멀리즘 미술이 현상학적 장소 특정성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킨 이후, 현대미술은 제도 비평적 장소 특정성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화이트큐브와 대지와 도심 공간 등을 ‘미술의 장소’로서 의제화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세대의 미술가들은 장소 특정성의 논리를 장소에 연루되는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맥락에 부여해, 담론적 장소 특정성이라는 신천지를 개척해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맥락 특정성의 추동은 어디로 향했을까? 화이트큐브 비판 이후의 미술관과 갤러리 공간을 전제로 한 상황에서, 예술과 사회가 상호 조우하는 접면에 특정성의 논리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98-2008년 시기의 서유럽 현대미술을 관통했던 관계 미학의 핵심이었다. 하면, 관계 특정적 미술 이후의 과제는 무엇일까?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7.24. TUE
개념적 매시업과 위계적 협업: 이것저것 뒤섞는 갑을 전치의 예술적 방법
오늘의 현대미술가들은 예술적 실험을 지속하기 위해 과거엔 시도하지 않았던, 희한한 형식의 뒤섞기를 시도하곤 한다. 예의 대화와 합의와 동조에 의한 협업이 아니라, 각자의 전형적 방법론을 특정한 전제 조건에 따라 무심하게 재조합하거나, 혹은 제 개인 작업에서도 상호 무관한 이질적인 개념과 요소들을 하나의 조형으로 연결해, 새로운 예술적 시공을 콜라주-연출해내기도 한다.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대중음악에서 유래하는 ‘매시업’이다. 한데, 그러한 매시업은 작업 과정에도 적용된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위계적 협업이다. 예술가의 협업이라고 하면, 보통은 서로 뜻이 잘 맞아서 매번 의견 합치를 통해 협업하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공동 명의로 나오는 원고를 보면, 의아해하는 독자도 있다. 아니 글을 어떻게 둘이서 쓰지? 하지만, 대개의 훌륭한 협업은, 의견 일치를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특정한 결정 사항을 서로에게 일임/아웃소싱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일하는 양도 딱 1/n로 나뉘지 않는다. 개별 협업건에서 누군가는 더 많이 혹은 더 주도적으로 일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양자 혹은 다자간 낙차를 활용하는 협업은 어떻게 실험돼왔을까?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7.31. TUE
‘굿즈’ 혹은 여행용 가방 이후: 마르셀 뒤샹이 기념품의 양태로 파생되는 미술을 통해 판단 유예의 장을 확보해냈던 까닭은?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테이트미술관의 터빈홀이나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처럼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초대형 미술품을 떠올린다. 사람 사는 집의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구식 그림의 감각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식으로, 신자유주의적 열망에 맞춰 몸집을 불리고 불려온 소위 ‘세계적 작가’들의 설치 작업을 보면, ‘참으로 다들 낯도 두껍고 욕심도 크구나-’하는 씁쓸한 감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부자가 아니어도 구매할 수 있고, 작은 집에 사는 사람도 소유할 수 있는, 기념품 형태의 미술품도 있다. 이른바 ‘굿즈’가 그것이다. 하면, 마르셀 뒤샹이 기념품의 양태로 파생되는 미술을 통해 판단 유예의 장을 확보해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뒤샹의 여행용 가방 이후, 왜 그를 능가하는 작업은 제작되지 못했던 것일까?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8.7. TUE
회화적 회화와 조각적 조각: 현대미술에서 환영성을 자가 폭로하는 거친 표현은 왜 불가피했는가?
렘브란트 이후의 회화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회화적 회화(painterly painting)’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회화적 회화’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공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회화적 회화’의 역사적 계보를 꿰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관례적으로 ‘painterly painting’을 ‘회화적 회화’라고 번역하지만, 사실 ‘화가적 회화’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체 ‘회화적 회화’란 무엇일까? 여전히 ‘회화적 회화’로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8.14. TUE
비평적 레이어: 층위의 중첩을 통해, 순수층위의 투명성을 부정하고, 새로운 의미의 길을 트다
최근 현대미술계에서 각광받는 화가들을 살펴보면, 화면의 복합적 중첩을 통해 새로운 회화적 실험을 모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가 입장에선, 컴퓨팅 환경이나, 스마트 기기의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제공하는 시각적 경험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한 경험을 회화, 특히 그리기 행위로 번안하려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화 초기에 자동차를 대리석 조각으로 정교하게 재현하고자 애썼던 조각가/건축가 카미유 르페브르의 <에밀 르바소르 기념비>의 사례처럼, 시대착오적인 노력, 헛된 시도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화면 중첩의 문법은, 언제 누가 왜 시작한 것일까?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8.21. TUE
스마트기기로 재매개된 세상과 현대시각예술의 위기: 현대예술을 모방하고 의태하는 실재계의 대두가 뜻하는 바는?
2014년, 나는 “일상을 모방한 문화와 예술로 세상을 바꾸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자본주의의 상업적 실재 그 자체가 예술화할 차례다”라고 주장했던 바 있다. 삶 혹은 라이프스타일의 미학화 경향도 두드러졌지만, 간소한 삶을 추구하며 소비주의에 저항했던 미니멀리스트들은, 변용 가능한 철학이나 변주 가능한 대안의 제시에 실패해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고 말았다. 오히려 대안은, 돈이 되는 곳에서 형성되고 있다. 즉, 스트리트패션 아이템을 수집하고, 두르고, 사재기해 적정 시점에 비싸게 되파는 스니커헤즈나 하이프비스트들의 리그 말이다. [...] 건축을 전공한 패션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상업적 실재의 한 영역(예를 들어, 스니커즈나 의복)을 레디메이드라고 규정함으로써, 그 영역을 참조적 현대성의 맥락에서 재창조하는 비즈니스-아트에 도전했고, 또 성공했다. 그가 만든 상업적 실재로서의 예술-제품들은, 아직 그리 대단해 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식론적 전환의 차원에서 보면, 그는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아로새긴 셈이다. 현대예술을 모방하고 의태하는 상업적 실재의 등장은, 오늘의 현대미술과 현대미술가와 현대미술계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페리지 아트스쿨에서는 영화미디어를 연구하고 계시는 김지훈 선생님과 기계미학을 연구하시는 이영준 선생님의 강의를 준비하였습니다. 현대미술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영상과 기계 매체에 대한 강의를 통해서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시각예술은 어떻게 변모해 나갈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매체들을 통해 어떤 것을 보고 느끼게 될 것인지에 대해 동시대의 상황과 흐름을 살펴 보면서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소 : 페리지갤러리 B2 페리지 홀
기간 : 3.9. SAT-2.27. TUE
시간: 오후 3-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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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TUE
'전시의 영화': 영화의 갤러리로의 이주, 그 역사와 쟁점 (마감)
199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한 '영상 설치미술의 영화적 전환' 및 영화 관련 전시의 유행과 관련된 역사적 흐름을 조감하고 영화와 현대미술 모두에서 이러한 흐름과 관련된 비평적 쟁점을 영화의 위상, 비디오아트의 위상, 관람성의 문제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김지훈 (중앙대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1.16. TUE
셀룰로이드의 폐허, 역사가로서의 작가 (마감)
'전시의 영화'의 한 경향으로 전통적 영화의 매체를 규정한 셀룰로이드의 역사성에서 출발하여 장소와 인물, 시대에 대한 기억을 조사하고 재구성하는 아카이브 충동(archival impulse)을 실현해 온 타시타 딘, 매튜 버킹엄 등의 작가를 살펴본다.
김지훈 (중앙대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1.23. TUE
재활용, 영화의 리메이킹 (마감)
'전시의 영화'의 또 다른 경향으로, 영화의 미학적, 기술적, 역사적 구성요소와 영화사의 단편을 전용하고 재활용함으로써 현대미술의 경향을 이끌고 영화를 재창안하는 더글러스 고든, 스탠 더글러스, 피에르 위그 등의 작가를 살펴본다.
김지훈 (중앙대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1.30. TUE
영화적 내러티브의 재창안 (마감)
멀티스크린 인터페이스와 스크린의 건축적 배치를 활용하여 영화의 내러티브와 시간-이미지를 공간적, 감각적 경험으로 번역해 온 덕 에이트킨, 아이작 줄리안, 에이자-리사 아틸라 등의 작가를 살펴본다.
김지훈 (중앙대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2.6. TUE
현대미술에 나타난 기계감각 (마감)
기계감각이 처음으로 제대로 시각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디드로의 백과전서 (1760)이후이다. 그 이후로 본격적으로 근대가 시작되면서 수 많은 작가들이 기계를 만들거나 기계에 대해 반응하는 작업들을 한다. 이 강의에서는 미래파, 러시아 구축주의, 피카비아, 파나마렌코, 뒤샹, 백남준, 정성윤 등 수많은 국내외의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기계와 현대미술의 관계를 알아본다. 어떤 작가는 기계 자체가 좋아서, 어떤 작가는 기계를 은유의 수단으로, 어떤 작가는 기계를 비판하기 위해 기계를 작업에 쓴다. 작가들의 다양한 태도의 스펙트럼을 통해 기계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아본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2.13. TUE
물질적 존재자인 기계의 감각 (마감)
실리콘, 타이타늄, 두랄루민 등 새로운 물질들이 우리 삶에 바싹 들어와 있다. 그런데 물질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이 의뭉스럽게 들어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아무런 생각을 못하고 있다. 과연 물질에는 의미가 없을까? 그것들이 이루어낸 기계에도 아무 의미가 없을까? 타이타늄으로 된 팬 블레이드를 갖춘 제트 엔진은 어떤 성능을 발휘하는 걸까? 타이타늄으로 된 등산용 숟가락을 가지고 산에 가신 아빠의 산행은 더 즐거울까? 우리는 물질을 통제하는 정보, 그것을 우습게 아는 형이상학,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한 지구환경이라는 복합체 속에 살고 있다. 이 강의에서는 그런 복합체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2.20. TUE
관찰, 측정, 해석, 제어의 감각 (마감)
‘통제 되지 않은 힘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는 어느 타이어 광고의 문구이다. 기계의 핵심은 제어이다. 복잡한 기계의 세부구조는 제어를 위해 만들어져 있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기계는 이미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기계들이 실제로 제어를 잘 따르고 있을까? 혼자서 아무 번호나 전화 거는 스마트폰, 차가 혼자 마구 내달리는 급발진 현상, 아군의 시설물을 마구 파괴해 버리는 미사일 등, 우리는 참으로 지지고 볶는 제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 강의에서는 기계의 제어는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본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2.27. TUE
순환의 기계들—항해와 일상생활 (마감)
고정된 장소에서 고정된 일을 하는 우리들은 이 세계의 본질이 순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혹은 느끼고 있을까? 그런 사실은 이미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가 말 한 것이다. 현대의 철학자들이 ‘되기’라든가 ‘변증법’ 같은 식으로 다르게 표현했을 뿐이다. 지구를 움직이는 것은 수 많은 크고 작은 순환의 장치들이다. 이 강의에서는 ‘순환기계로서의 항해기계’라는 개념을 가지고 선박내부와 외부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순환장치들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알아본다. 이런 것들을 설명해줘도 그게 도대체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정류장에서 버스 타는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항만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고 대부분의 순환의 장치들은 장기나 혈관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강의에서는 ‘사람은 왜 항해하는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순환의 메커니즘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것이다.
이영준 (기계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