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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GEE GALLERY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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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전시
2017-05-08
전시장에서 만나는 ‘슬기와 민’의 작품은 조금 어렵기는 해도, 언제나 하고자 했던 말은 명확했다. 그러나 이번 단독 전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단명 자료: 포스터, 서울, 2016〉, 2017〈단명 자료: 포스터, 서울, 2016〉, 2017



‘어떤 대상을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것처럼 흐릿한 이미지’

슬기와 민은 ‘페리지(Perigee) 060421-170513’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묘사한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은 액자에 넣어져 정갈하게 걸려있지만, 이미지는 그 어느 하나 뚜렷한 것이 없다.

전시장 한 면에 기대어 있는 〈작품 목록〉을 봐야 작품들이 모두 슬기와 민이 작업했던 포스터, 엽서, 전단을 최대한 흐릿하게 만든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중앙에 전시된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의 동명의 책을 흐릿하게 만든 것으로, 슬기와 민이 가지고 있는 책을 찢어진 부분까지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어떠한 메시지도 읽히지 않은 작품들은 ‘이미지-형태’로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기존 작업을 흐릿하게 만든 작품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전시장 밖에 〈작품 설명〉이라는 책을 빌려볼 수는 있지만, 작품과 상관없다.

(좌) 〈단명 자료: 포스터, 서울, 2016〉, 2017. (우) 〈단명 자료: 포스터, 광주, 2014?2015〉, 2017(좌) 〈단명 자료: 포스터, 서울, 2016〉, 2017. (우) 〈단명 자료: 포스터, 광주, 2014-2015〉, 2017


〈단명 자료: 명함, 마스트리흐트, 2009〉, 2017〈단명 자료: 명함, 마스트리흐트, 2009〉, 2017


〈코스모스, 한국어 3판, 1981〉, 2017〈코스모스, 한국어 3판, 1981〉, 2017


〈작품설명〉, 2017〈작품설명〉, 2017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전시. 바로 이것이 슬기와 민이 의도한 부분이다. 작품은 갤러리에 ‘놓여’ 있을 뿐이고, 관객은 작품을 ‘볼’뿐이다. 심지어 작가-작품-관람자 간의 정서적 소통도 없어도 된다.

슬기와 민은 대부분 관객이 ‘작가 의도’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의도대로 읽히는 작품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만약 아무런 의도가 없는 작품을 마주한다면 관객은 무엇을 보게 될까? 내용이 없더라도 전시 요건(작품, 갤러리, 관객)만 있는 전시는 진짜 전시일까?

이렇게 슬기와 민은 아무것도 아닌 이미지로 여러 질문을 던진다. ‘의도가 없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의도일 것이다. 슬기와 민의 새로운 시도를 보고 싶다면, 어서 페리지 갤러리에 가보자. 작가 의도와 다르게 의외로 많은 걸 발견할 수 있다.





Perigee 060421-170513
2017.03.09 - 05.13, 10:30AM - 06:30PM (매주 일요일 휴관)
페리지 갤러리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18)
무료 관람


에디터_ 허영은(yeheo@jungle.co.kr)
자료제공_페리지갤러리(www.perig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