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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GEE GALLERY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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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예나 지금이나…” 이념과잉 사회에 던지는 예술의 질타
2015-12-30
양아치 ‘뼈와 살이 타는 밤’전
김기라 ‘마지막 잎새’전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전시가 두 곳에서 열리고 있다. 양아치 작가의 ‘뼈와 살이 타는 밤’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반복을 어둠으로 상징한 작업을 선보였다(왼쪽). 김기라 작가는 건물 유리를 붉은 필름으로 덮은 작업을 통해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학고재, 페리지 갤러리 제공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런 고민을 시각 예술로 풀어낸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양아치(본명 조성진·44) 작가의 ‘뼈와 살이 타는 밤’전과 김기라 작가(40)의 ‘마지막 잎새’전.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작업하는 40대 작가들이 묵직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전시다.

양아치 작가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5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 제목은 1980년대 신군부에서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리려 3S(Sex, Screen, Sports) 정책을 추구하던 시절 등장한 에로 영화에서 따왔다. 그때나 30여 년이 흐른 지금이나 겉으로 안정된 듯 보일 뿐 한국 사회의 속내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7월 27일까지. 02-720-1524

‘마지막 잎새’전은 개인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 과잉을 꼬집는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이념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실. 작가는 이를 권력자와 피권력자, 기득권과 소외계층의 문제로만 좁게 해석하기보다 실체 없는 허깨비 같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하는 폭력적 상황으로 인식한다. 휴대전화 부품을 만드는 KH바텍이 사옥에 마련한 비영리 공간 페리지갤러리(서울 서초구 반포대로)의 개관전. 7월 31일까지. 070-4676-7034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비춘 전시들이 흥미롭다. 주제를 파고든 작가들의 뚝심과 더불어 상상력, 다양한 장르를 두루 소화하는 역량도 돋보인다.

남북 사이의 가상 국가 ‘미들 코리아’를 화두로 작업해온 양아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현실과 허구를 교묘히 교직한다. 집 근처 인왕산으로 야간 산행을 다닐 때 머릿속에 떠오른 기이한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 영상 설치작업으로 풀어냈다.

세월호 참사 등을 보면서 작가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되풀이되는 모습에 우울함을 떨칠 수 없었다. 꿈과 현실이 중첩된 소설 ‘구운몽’처럼 우리 사회 역시 ‘죽었다고 생각한 게 살아있고 살아있어야 할 게 죽어있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 암울한 현실과 불편한 진실을 은유적으로 함축한 것이 이번 전시다. 긴 가발을 늘어뜨린 남자와 나라가 망할 때 피어났다는 망초밭이 등장하는 밤의 풍경은 괴기스럽고 맥락을 알기 어렵다. 여기에 이상향을 나타내는 황금산, 생명력을 상징하는 복숭아의 이미지가 어우러진다. 불안 분노 혼돈이 눅진하게 스며든 암흑 속에서도 신세계를 기대하는 인간의 바람이 느껴진다.

김기라 작가의 ‘이념의 무게-마지막 잎새’는 전시장이 아닌 200석 규모의 지하 연주홀에서 소리 위주로 감상하는 작품이다. 올 2월 금강산에서 상봉한 남북이산가족들이 나눈 대화를 각색해 성우들이 낭독한다. 캄캄한 객석에 앉으면 라디오 드라마처럼 토막토막 31개 대화가 펼쳐진다. “엄마가요, 아버지 많이 기다렸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고…오실 줄 알고. 만날 내 손 잡고 오실 것 같다고, 오신다고….” “진짜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었다. 이번에 올 줄 알고, 만날 줄 알고 기다린 건데….” 60대 딸과 80대 아버지의 대화는 통일이란 이데올로기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존중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쉬운 진리를 일깨운다.

1층 유리창을 적색 필름으로 덮어 모든 풍경을 붉게 물들인 작업, ON과 NO를 겹친 입체작품은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적대시하고 거부하는 이념의 그늘을 돌아보게 한다. 다른 색 끈으로 한데 묶인 두 사람의 영상처럼 모두에게 득이 안 되는 행위를 끝없이 되풀이하는 우리 사회를 반성하게 이끈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