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

PERIGEE GALLERY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27
[경향신문] 인간의 욕망 너머 다양한 시공간 속으로… 크리스티 경매 한국 최고가 홍경택 신작 전시회
2015-12-17
미술가 홍경택(47)은 흔히 ‘비싼 작가’로 거론된다. 그가 경원대(현 가천대) 졸업 직후인 1995년부터 1998년에 걸쳐 완성한 ‘연필 1’(259×581㎝)은 2013년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9억6000만원에 낙찰돼 이 경매 사상 한국 현대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2000년 첫 개인전 때 3000만원에 출품했던 이 작품은 2007년 같은 경매에서 7억7760만원으로 처음 낙찰될 당시에도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스스로 최고 기록을 뒤집은 셈이다.

그는 지난 한 해 국내 관객과 활발하게 만났다. 이인성미술상 수상 기념으로 대구 문화예술회관에서 중간 회고전 성격의 전시를 연 데 이어 12월부터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그린 그린 그래스’란 제목으로 신작 1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또 ‘경매 작가’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홍콩, 일본의 미술관 전시도 타진 중이다. 지난 15일 서울 천호동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경매 최고가 기록 타이틀이
나를 유명하게 해줬지만
작품보다 가격에만 관심이 불편

▲ 나이가 들면서 시간에 대해 생각
신작전에선 기존의 풍과 멀어져
이미지 탈피 위해 해외전 추진도

- 경매 최고가 기록이란 타이틀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나를 유명하게 해줬지만 좋지만은 않다. 작품보다 가격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경매는 운송비, 보험 등 비용이 많이 들어 작가에게 오는 돈은 절반도 안된다. 또 신작 가격이 그만큼 오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국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 어떤 측면인가.

“한국 미술시장은 많이 커졌지만 유명 해외 작가에게 쏠려 있다. 더욱이 젊은 작가에게는 기회가 없다. 세계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2000년대부터 화랑들이 곧바로 해외 경매에 그림을 들고 나갔다. 다행히 그 덕을 봤다.”

- 해외에서 그림이 더 많이 팔리나.

“그렇다. 우리 컬렉터들은 중간색을 쓴 조용한 그림을 좋아한다. 내 그림은 원색에다 강한 편이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 ‘연필’ 연작이 유명한데 어떻게 구상했나.

“대학생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연필꽂이에 필기구가 꽂혀 있는 걸 봤는데 위로 퍼진 모습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원래 배경을 그리려다 배경까지 연필로 채우면서 형태가 완성됐다. 작가로서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대인의 집착적인 욕망이란 주제로 나아갔다. 졸업 직후 경기도의 축사에 작업실을 얻어 200호짜리 캔버스 3개를 붙여놓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작품이 큰 데다 세부가 복잡해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몇 년씩 걸렸다.”

- 대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전체 윤곽만 구상하고 균형을 맞춰 세부를 채우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대작은 세부를 완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 작업으로 이어가는 데 유리하다.”


‘여섯 개의 하늘’, 195×195㎝, 린넨에 오일.

홍경택의 그림은 현대인의 집착적인 욕망이란 주제를 펜과 연필, 책 그리고 다양한 패턴으로 보여준다. 펑크음악과 유명 인사들이 결합된 ‘훵케스트라’ 연작에서는 영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 고급한 것과 저급한 것의 차이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빽빽한 세부, 원근법이 무시된 다차원과 다초점의 구도는 홍경택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의 개성은 작업실에서도 드러난다. 깨끗하게 정돈된 작업실에는 로봇 피규어, 금붕어 조각, 책, LP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조수들과 함께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소우주로 여긴다.

그런데 이번 신작전에서는 달라진 흐름을 선보였다. 연필, 책, 골프채 등의 오브제가 밀집한 사이사이로 골프장, 정원, 우주 등의 풍경이 드러난다. 특히 기존 ‘홍경택풍’과는 한참 멀어진 ‘여섯 개의 하늘’이란 작품을 미래의 창작 방향으로 꼽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혹은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차원뿐 아니라 지구상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시공간을 형상화했다. 그곳을 가로지르는 나체의 남자는 자궁에서 우주로 회귀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 신작의 의미는.

“나이가 들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과거는 일그러져 있고 현재는 너무 또렷한 찰나, 미래는 희미하다’고 쓴 적이 있다. ‘연필’ 그림과 같은 구도로 골프채를 그린 작품 ‘반추’에선 골프채 표면에 나와 작업실의 모습을 표현했다. 시간성을 도입하려는 시도다.”

- 앞으로 계획은.

“작품은 주로 해외 아트페어, 경매에서 팔고 국내에서는 미술관 위주로 전시하는 방식으로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을 잡아왔다. 지금은 가까운 시간 안에 일본, 홍콩의 미술관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


전시는 31일까지. (070)4676-7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