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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서재 너머 인간의 덧없는 욕망이…
2015-12-17
생동감 있는 색색의 필기구들이 화면 가득한 그림으로 유명한 홍경택 작가의 작품에 작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전통 책가도 모습 안쪽에 풍경이 자리한 그림들이 등장하고 있다.

“색면추상과 구상의 혼합이 초기작품의 기조였다면 이젠 초현실주의 화풍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내 나름대로 뿜어내고 싶다.”

홍경택 작가가 책가도 속에 에베레스트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 섰다. 그는 “우리는 자연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렌즈(책가도)로 본다”고 말했다.

홍 작가의 개인전 ‘그린 그린 그래스’가 내년 1월31일까지 서울 서초구 페리지 갤러리에서 열린다. 그의 예전 작품들은 색면 추상 바탕에 정물그림과 플라스틱 컵과 칫솔 등 물성을 드러내는 사실적인 그림들이 주종을 이뤘다. 최근 작품엔 필기구 대신에 골프채를 밀집해 그렸다. 여러 골프채를 일일이 하나 하나 사진을 찍어 밀집해서 그린 작품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골프채 머리에 비춘 작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볼록 거울에 비쳐진 것 같은 왜곡된 모습이다. 필기구 그림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반추해 보려는 자세가 읽혀진다.


책가도 틀 속으로 보이는 골프장과 에베레스트 풍경은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에베레스트 풍경엔 촛불이 등장하고 있다. 17세기 초에 네덜란드에서 꽃을 피운 중요한 정물화 양식인 바니타스 회화를 연상시킨다. 죽음의 불가피성, 속세의 업적이나 쾌락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는데 촛불도 그중에 하나다.

“한국사회에서 골프는 비싼 스포츠이고 골프장은 많은 이들의 욕망의 공간이다. 에베레스트산도 많은 이들이 정복하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다. 인간이 책가도로 상징되는 문명의 틀로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환기시켜주고 싶었다.” 바니타스 회화처럼 욕망의 덧없음을 말해주려는 듯하다.

그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의 그림이 구상과 색면추상의 결합, 초현실주의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작가는 어떤 하나에만 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에 서 있는 관찰자이다. 혹자는 내가 분열적으로 보이겠지만 어떤 선에서 내 나름의 균형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내년에 홍콩과 일본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 자신을 제대로 세계무대에 알리기 위한 행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2014120900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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