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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GEE GALLERY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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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시대와 일상 건드리는 색다른 신작들…이용백·잭슨홍 개인전
2016-09-09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 차려진 잭슨홍 작가의 신작 전시장 모습.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 차려진 잭슨홍 작가의 신작 전시장 모습.

올해 미술판의 9월은 잇따른 대형비엔날레와 외국인 컬렉터, 기획자들을 겨냥한 화랑, 미술관의 전시회들로 빼곡하다. 덩치와 난해한 이미지만 주로 내세운 비엔날레의 진부한 틀거지가 식상하거나 회고전, 구작 짜깁기로 구색을 맞춘 화랑, 미술관 전시가 성에 차지 않는다면 개성파 소장작가들의 신작전에 눈길을 돌려볼 만하다. 201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가인 미디어아티스트 이용백씨와 디자인과 순수미술 사이의 경계작업을 벌여온 잭슨홍 작가가 눈맛 나는 신작들을 내놓았다.

■ 제 구실 못해 작품이 된 디자인 어디서 본 듯한 디자인 제품 같은데 도통 용도를 짐작할 수 없다. 서울 서초동 페리지 갤러리의 전시장 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지거나 세워진 작가 잭슨홍의 플라스틱, 금속제 조형물들이 그렇다. 분명히 매끈한 선으로 디자인 됐지만 어느 기기의 부속인지, 아니면 독립적으로 어떤 구실을 하는 물건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기실은 그냥 의미를 잃고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파편 같은 물건들일 뿐이다. 작가가 ‘오토매틱파일럿(자동조정장치)’이라고 전시제목을 단 것처럼 작품들은 기기 부위의 굴곡선, 뻗어나온 막대나 돌출부 등이 영낙없이 가전제품이나 헬스머신, 각종 생활용 기기 등의 외양을 닮았다. 하지만, 작품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초현실적이고 심오한 분위기마저 띠게 된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비행기의 자동조정장치처럼 해석한 것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90년대 이래로 디자인과 현대미술의 난해한 매체실험 경계 사이를 오가는 작가의 전시장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도 모호함과 어떤 종류의 심란함에 가깝다. 그는 이 전시에서도 하나의 의미나 상황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특유의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서울 서촌의 전시공간 ‘시청각’에서 연 전시에서는 한옥집 공간에 조악하게 만든 인간상들이 서로 뒤얽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11월12일까지. (070)4676-7091.

이용백 작가의 키네틱 설치작품인  `낯선 산책'. 서로 엇갈리게 모터로 움직이는 거울판들이 주변 풍경을 일그러지게 비춰내면서 보는 이의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몇년간 비상식적인 사건사고가 넘쳐나는데 주변 사람들은 아무일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기괴하고 이상했다는 작가는 그런 괴리감을 이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용백 작가의 키네틱 설치작품인 `낯선 산책'. 서로 엇갈리게 모터로 움직이는 거울판들이 주변 풍경을 일그러지게 비춰내면서 보는 이의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몇년간 비상식적인 사건사고가 넘쳐나는데 주변 사람들은 아무일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기괴하고 이상했다는 작가는 그런 괴리감을 이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 작가도 관객도 시대도 흔들흔들 그의 신작으로 다가가면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관객 주위를 둘러싼 거울 8개가 번갈아 움직이면서 비추는 전시장 바닥과 벽이 흔들흔들거린다. 거울 안 검은 대나무들도 흐늘거리고, 바닥에 땅을 붙이고 있는데도 중심을 잃는 듯한 착시효과가 관객을 때린다.

이용백 작가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 신관에 선보이고 있는 설치작품 ‘낯선 산책’은 작가의 단말마 같은 비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사고가 빈발하고 상식이 쉽사리 무너지는 한국사회에서 버티며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실감나는 흔들거리는 이미지와 느낌으로 표현해냈다. 미디어영상을 주로 작업해왔지만 누구보다도 몸으로 느끼고 표출하는데 능한 이가 이용백 작가다. 온라인 지도에서 보안을 이유로 남북한 휴전선 주변을 허옇게 지워버린 부분만 4.3m의 대형 조각으로 떠낸 다른 신작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에서도 보이듯 관념에 머물지 않고 피부로 와닿는 일상의 모순을 간취하는 감각이 이 전시에서도 여실히 발산되고 있다. 25일까지. (02)720-152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페리지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