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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GEE GALLERY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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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지금 이 전시
2019-10-25
멈춰 서게 만들고, 소리 없이 말을 걸어오고, 두 눈과 귀를 열게 한다. 익숙한 현실을 뚫고 다시 들여다보며 사유하고 싶은 어떤 세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필사적으로 이해하려 애쓰던 라이카의 심장 박동 수가 무중력 상태에서 안정을 되찾은 짧은 순간, 라이카는 대기권 밖에서 지구와 별들을 바라보았다. 초속 8킬로미터의 속도로 어둠을 가로지르며, 이제 이 개는 고요한 우주에 홀로 떠오른다. 누구에게라도 낯설 교교한 풍경, 시각과 후각, 청각으로 감지했던 자신의 좌표가 사라진 이 세계에서 느꼈을 절대 고독을 인간인 우리는 헤아릴 수 있을까? 감히 나는 이 전시장에 서서 그 고독을 상상해본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난민들처럼, 쓰나미를 마주한 무기력한 문명처럼, 아무도 읽지 못할 모스 부호를 타전하는 우주선처럼 소멸 이전의 고독을, 그리고 이 상상의 자리에는 연민과 비애가 동석한다.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이 자리, 혹은 저 자리에 서게 될 수 있기에, 이 모든 자리는 개인적이면서도 복수적이며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이다. 페리지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최대진 작가의 개인전 <개의 자리>는 우리가 내몰려서 서게 될지 모를 다양한 자리에 대한 변주이며, 그 사건들의 의미를, 절망적인 반복성의 이유를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하려는 시도다. 최대진의 열 점의 드로잉은 버려진 우주선 발사 구역처럼 쓸쓸하고 황량한 전시장에 걸려 있다. 입구에서 시선을 가로막는 나무 구조물을 지나면, 그 뒤로 중앙에 자리 잡은 비계에 별 다른 시간적, 공간적 개연성 없이 이 전시 공간으로 호출된 세 점의 조형물이 보인다. 하지만 아예 연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니, 세 작품 모두 막다른 길에 몰린 절망적이고 고독한 봉기와 흡사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이런 예술적인 호전성을 좋아한다. 그는 오랜 응시와 성찰을 제안하기보다 의심과 불확실을, 불온함과 직감을, 찬란한 날보다는 치욕적인 실패를 제시한다. 결국 최대진이 그려내는 것은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쩌면 우리 “역사의 절망적인 연대기”일지 모른다. 수많은 생명과 라이카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우주에 더 가까워졌는지 몰라도, 이곳은 여전히 유토피아가 아니며 우리는 적당히 자전과 공전을 반복할 뿐이다. 나는 희미하게 밤벌레 소리가 들리는 전시장에 서서 긴 서사시의 시작을 알리는 일리아드의 첫 문장을 모스 부호로 타전 받으며 리베카 솔닛의 이 문장을 떠올린다.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타자의 자리에 서서 그 타자에게 도래하는 고통을 그들이 홀로 고독하지 않도록 함께 살아내는 것, 이를 공감하고 연민하는 상상력, 그리고 다시는 그 자리로 그와 그들을 내모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동요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구 궤도를 돌던 스푸트니크 2호는 오래전 심장이 뛰기를 멈춘 라이카를 태운 채 2천5백여 바퀴의 어느 시점에서 대기권에 재돌입해 유성처럼 지구에 흩뿌려졌다. 하얗게 빛을 내며 떨어진 조각난 선체나 라이카 중 지상에 닿은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가장 높이 나는 철새들이 지구에서 가장 먼저, 어쩌면 유일하게 라이카를 반겨주었다. 1958년 4월 14일, 우주만큼의 고독이 축복처럼 지구에 내려앉았다.

강영희(보안책방 운영자), 2019. 10. 23.
(기사 원문 : http://www.gqkorea.co.kr/2019/10/23/지금-이-전시/)